안녕 이번에 다룰 주제는
한국 콜라의 역사와 코카콜라의 시스템과 전략임
한국에 언제부터 콜라가 유래되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지
코카콜라의 보틀링 시스템과 전략에 대해 다뤄봄
주로 코카콜라 위주로 다뤄보면서
펩시나 콤비콜라, 8.15콜라에 대해서도 다뤄봄
[목차]
# 한국 콜라시장의 역사
코카콜라의 전략
오늘은 걍 따로 파트 따로 나누지않고
걍 역사를 풀어가면서 서술함
* 그리고 너무 길다는 사람들은
맨 마지막에 요약해놓은거 있으니
그거 보시길 권함
# 한국 콜라시장의 역사
코카콜라의 전략
* 1945년 미 군정기를 거쳐
한국전쟁 전후 본격 유입
한국에 콜라가 처음으로 유래된 시기는
1945년 9월 ~ 1948년 8월까지 이어진 미 군정기때라고함
오른쪽 사진은 1947년 2월 미군이 촬영한
코카 콜라를 마시는 서울의 어느 선비 모습임
저 양반이 콜라를 사다 마셨을 리는 없고
아마 이 사진을 촬영한 미군이 줬을거라 추정됨
그러다 1950년 한국전이 발발하고
한국을 구하기위해 미군이 대거 증파되면서
본격적으로 콜라가 보급되기 시작함
당시 미군들에게 콜라를 보급하기위해
부산에 소규모로 공장이 운영되었으며
이렇게 생산된 콜라가 미군 PX를 거쳐
미군들과 같이 일하는 한국인들이 먹게되고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함
그런 콜라 보급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이 등장함
콜라광 아이젠하워
바로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임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콜라광으로 유명함
과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전구 사령관으로
유럽과 북아프리카 전선을 총괄하던 그는
1943년 코카콜라에 긴급 SOS를 보내는데
바로 콜라 300만병을 보내달라는 것
그도 그런것이 당시 코카콜라는
군복만 입고있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세계 어디든 군인에겐 무조건 단돈 5센트란
파격적 할인정책을 발표했고
이 발표를 듣고 이때다 싶어서
(본인이 엄청 마시고 싶기도 하고)
아이젠하워 장군이 그런 주문을 한거임
코카콜라사는 엥? 300만병? 그건 좀 ....
이러자 아이젠하워 사령관이 제안을 함
미군이 진주한 전투지역엔
우리가 코카콜라 공장 10개를 세울테니
너희는 미군 장병들에게 월 600만 병씩
공급할 수 있는 원액과 기술자들을 보내달라 요구함
코카콜라는 바로 ㅇㅋ 수락하게됨
물론 이 결정은 훗날 코카콜라가
전세계에 보급되는 신의 한수가 됨
코카콜라 보틀링 시스템이란?
전세계에 코카콜라가 보급되는 계기
뒤에 가서 또 설명하겠지만
코카콜라엔 보틀링 시스템이란게 있음
코카 콜라는 원액을 생산 판매하고
이 원액은 코카콜라사의 트레이드 마크를 새긴
완제품을 생산 판매하는 전 세계의 보틀러들에게 판매됨
여기서 코카콜라 보틀러란 코카콜라 브랜드를 포함
코카콜라사의 여러 제품 (EX) 환타, 스프라이트 등등) 을
생산, 유통, 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회사를 말하는데
한국에선 LG생활건강이 그 역할을 하고 있음
LG생활건강 자회사인 코카콜라 음료에서
한국 코카콜라에 원액을 받아다 생산해
한국시장에 팔아먹는 시스템인데
이러한 시스템이 아이젠하워 사령관으로 인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대에서도 적용됐다는 점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코카콜라는
유럽, 아프리카, 태평양전선에서 총 64개 해외공장을 운영함
그 중 59개 공장은 미국 정부 조달 전용이였으며
이때 미군이 소비한 콜라만 5억병에 달했다고 알려짐
당시 미국정부와 군 당국은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장병들 먹게 콜라는 떨어지지않게 하라 지시했고
당시 콜라 보급하나는 정말 기가 막히게 잘 나왔다고함
이렇게 전세계 곳곳에 생겨난 코카콜라 공장들은
전쟁이 끝난 후 코카콜라 직영으로 남든가
현지 유력 기업 (보틀러)들에게 넘겨짐
이를 계기로 전 세계에 코카콜라가 전파되기 시작함
코카콜라 입장에선 신의 한수였던 셈
이렇게 될 수 있도록 뒷받침한게 바로 1923~1954년까지
무려 31년간 코카콜라 컴퍼니를 경영했던
로버트 우드러프 회장임
이 양반때부터 올림픽 후원을 시작해서
올림픽 = 코카콜라란 개념이 생겨났고
파격적 할인과 과감한 마케팅도 본격화되었으며
특히나 세계대전 당시 보틀링 시스템을
전 세계 곳곳으로 확대 정착시키면서 사업을 확장함
그래서 아이젠하워 + 우드러프 이 두 사람을
전세계에 코카콜라를 보급한 1등 공신으로 꼽곤 함
1952년 12월 당선인 신분으로
1960년 6월 대통령 신분으로
한국을 방문한 아이젠하워 대통령
한국에 콜라를 보급시키다
아무튼 콜라광이자 콜라 세계화 주역인
아이젠하워 장군이 대통령으로 당선됨
그는 당시 미국 조야의 핫 이슈였던
(요즘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생각하면 됨)
한국 전쟁 문제를 해결할 것을 내세웠고
당선인 신분으로 방한하게 되는데
이때 적어도 콜라보급만큼은 철저하게 하라 당부함
부산에 한국 첫 콜라공장이 생겨난 것도 이때
뒤이어 8년뒤인 1960년 6월엔
대통령 신분으로 방한하게 되는데
이때 한국민들은 우릴 구해주신 영웅이 오셨다고
(실상은 트루먼이지만 .. 그냥 넘어가자)
100만명 넘는 인파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고함
당시 서울 인구 (244만 명)의 40%정도라 추정
물론 동원도 있었겠지만 자발적인 인파가 대거 몰려
압사사고가 벌어지는 등 여러가지 일들이 많았는데
이때도 역시나 그의 콜라 사랑은 계속 됐다는 점
이때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콜라를 마시는 걸 본
한국의 고관대작, 상류층들은 너도 나도 따라하느라
콜라를 구해다마셨고 상류층들을 중심으로 유행함
그러다 점차 민간에 급속도로 퍼지게 되는데
* 1961년 본격 부상한 국산콜라
스페시콜라 (칠성콜라)
이 무렵 본격적으로 등장한게
바로 스페시콜라 (훗날 칠성콜라로 변경)임
한국전 발발 직전인 1950년 5월에 출시한
칠성 사이다로 한국 탄산음료시장의 시작을 알린
동방청량음료 (지금의 롯데칠성음료)가 콜라에도 뛰어듬
1957년 스페시콜라를 출시하는데
콜라 원액을 구하기 힘들다보니
우리가 알고있는 콜라맛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고함
하지만 이때만 하더라도 별 반응도 없었고
주로 미군 군납위주로 판매를 진행하다
아이젠하워 방한 이후 콜라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자
1961년부터 본격적으로 생산 판매에 들어가기 시작함
1962년 2월엔 동양맥주 (지금의 OB맥주)에서 만든
일명 OB콜라도 등장하게 되는데 두 콜라 모두
당시 조선일보 등 신문에 대대적으로 광고하면서
나름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고 알려짐
이 경쟁은 훗날 두산 (코카콜라) VS 롯데 (펩시콜라)로 이어짐
왜냐면 과거 동양맥주 (현 OB맥주)는 두산에 속했고
(그러다 지금은 맥주든 콜라든 두산이 다 팔아먹었고)
동방청량음료는 1974년 롯데에 인수되어 오늘에 이름
스페시콜라의 인기는 나름 상당해서
당시 한국 콜라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고
월남전 당시엔 남베트남에 수출까지 했다고함
* 1968년 5월 코카콜라 한국진출
두산 + 코카콜라 합작
두산그룹 산하 한양식품이
한국 최초의 보틀러로 선정
(서울 등 수도권 지역 담당)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스페시콜라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두산은 비장의 승부수를 꺼냄
바로 코카콜라를 한국에 들여오는 것
ㅅㅂ 한국 콜라가 콜라냐? 본토 콜라가 진짜지
사실 들여오기로 한건 60년대 중반이였음
하지만 코카콜라의 한국상륙을 가로막는 일이 발생하니..
코카콜라 한국 진출에
탄산음료 시장잠식을 우려한
결사반대하던 한국 기업들.gif
여기서 우리나라의 폐단 중 하나가 튀어나옴
바로 무조건적인 외국브랜드의 한국진출 반대
쌀 (농업) 개방도 그렇고 스크린 쿼터 문제 (영화)
유통이나 의료, 방송시장 개방문제 등등
미국은 무조건 막고보잔 정서가 있음
미국의 다국적 기업과 브랜드가 진출하면
마치 한국의 기업과 시장은 붕괴되는 것처럼
국내 기업이나 언론들이 합세해서
과장될 정도로 공포를 강조하는 경향이 강한데
국내 탄산음료업체들로 결성된 청량음료조합을 필두로
코카콜라 진출 결사반대를 외치며 투쟁에 들어감
단식 투쟁은 기본 정치권이나 언론에 로비까지 함
조선일보 등 주요 언론이나 당시 여야 정치권까지 나서서
코카콜라 들어오면 우리 기업, 시장 다 죽는다라며
코카콜라 한국 진출 저지를 거세게 주장함
존나 말 많으니 1965년 박정희 대통령이
서울 군자동 CC골프장으로
당시 한양식품 사장이자 훗날 두산회장이 된
박용곤 사장을 급히 호출하심
아니 도대체 코카콜라가 뭐길래 이리 말많냐
지금 여당인 공화당에서도 반대하고 난리다
그거 꼭 들여와야겠냐 물어보심
이때 박용곤 사장이 오히려 당당하게
코카콜라는 세계적인 음료고 언젠가 꼭 들어온다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때문에 조선이 망했다
이왕 들어올꺼 빨리 문 열고
우리 손으로 들여와야한다 설득했다고함
다 들으시고 박정희 대통령의 대답 알았다 그리고 끝
이걸로 코카콜라의 한국진출은 결정남 ㅋㅋㅋㅋ
한국에 코카콜라를 들여온
두산 박용곤 회장에 대해
요약해서 설명하면 이럼
두산그룹 초대회장인 박두병 회장의 장남
현 두산 박정원 회장의 아버지
전 두산 회장이자 현재 두산 인프라코어
대한 상공회의소 회장인 박용만 회장의 큰형임
참고로 박용곤 회장과 박용만 회장의 나이차는 23살 차이
거의 삼촌이나 (일찍 결혼한) 아버지뻘인데
막둥이 동생 박용욱 이생그룹회장과는 무려 29살 ...
박용곤 회장이 두산 자회사인
한양식품 사장으로 재직할 당시
코카콜라사의 한국 보틀러 (서울 등 수도권 지역)로
코카콜라를 본격적으로 들여오면서
한국에서 본격적인 코카콜라 생산판매가 시작됨
이때 공을 높이 인정받아 훗날 두산회장에 등극함
하지만 박용곤 회장의 최대 흑역사가 있음
바로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인데
(요즘 개봉한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이 이 사건 모티브임)
구미국가산업단지내 두산전자에서
독성물질인 페놀을 낙동강에 유출시키면서
낙동강을 취수원으로 하던 대구 등 TK나
심지어 부산 등 PK까지 심각한 피해를 끼치게 되는데
당시 TK는 물론 영남민심이 얼마나 험악했는지
대대적인 두산 불매운동과 시위가 전개됐고
이로 인해 당시 두산소유였던 OB맥주 점유율이 추락함
전국적으로 코카콜라의 점유율까지 대폭 하락하고
반면 펩시나 국산콜라들은 이때다 싶어 기세를 올림
이때 박용곤 회장도 책임을 지고 사임함
이때 격앙된 영남 민심은 지금까지 이어져
영남권 출신 40대 이상 사람들중 일부는
이때를 상기시키며 두산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곤 함
먹던 물에 똥도 아니고 독극물을 유출시켰으니 ...
영남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뒤집어졌던 사건으로
서울 등 수도권에서도 우리 수돗물도 혹시? 하는 생각에
한국 생수시장이 급성장하게된 계기라고 함
이 부분은 뒤에 가서 또 설명할거임
* 1997년 직영 전환전까지
코카콜라 한국시장 보틀링 시스템
* 1997년 직영전까지 한국 보틀러들
1968 수도권 보틀러 - 한양식품 (두산)
1969 부산/경남 보틀러 - 우성식품
1971 호남 보틀러 - 호남식품
1973 대구/경북/충청 보틀러 - 범양식품
1974 한국 코카콜라 설립 (국내 원액생산 시작)
아까 보틀러에 대한 설명은 했지?
코카콜라는 한양식품 (두산그룹)을 비롯해
지역별로 보틀러와 라이센스 계약을 맺고
본격 생산하게 되는데 이러한 체제는
1997년 직영전환 전까지 이어짐
이렇게 코카콜라의 한국상륙은 본격화됨
코카콜라는 한국진출과 함께 대대적으로
신문과 TV, 극장광고를 선보이는데
산뜻한 그 맛 오직 그것뿐! 이란 슬로건으로
건강한 20대 청춘남녀를 모델로 내세워
코카콜라의 역동적이고 서구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킴
그런데 이때 선정성 논란도 상당했다고함
탄산음료 자체가 젊은층을 타깃으로
역동적이고 건강한 이미지를 어필하다보니
뭐 수영복 입고 뛰어노는 장면을 다수 삽입하는데
당시 시대상에선 상당히 파격적이였다고함
(그건 본사 마케팅 지침이기도 했고)
그로 인해 당시 기성세대를 중심으로
ㅉㅉ 민망하다 저게 뭐냐 야하다
이런 지적과 비판이 쇄도했다는 점
지금보다 훨씬 더 엄격한 시절이였으니까
그래서 툭하면 칼질당하는게 일이었다고함
이 당시 1968년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코카콜라 초대모델로 활약한 인물이
바로 배우 김창숙이란 양반인데
1949년생으로 현재 우리 나이로 72살이심
당시 상당한 인기를 누리던 하이틴 스타로
10~20대 젊은 세대를 겨냥해 기용하는데
코카콜라가 초창기 한국에 정착하는데
크나큰 공헌을 했다고 알려짐
1969년 7월 기준 서울지역 다방 내
냉음료 매출 중 70%가 코카콜라였다고함
1981년 코카콜라 아줌마 등장
장수모델로 활동하며 매출 급상승
기존 젊은층 타깃에서
가족 단위 고객들로 타깃 확장 성공
그러던 중 1981년부터 전속모델로
배우 사미자를 기용해 쓰게 되는데
어느정도 코카콜라가 한국에서 알려지고
젊은층을 중심으론 활발히 소비되니
이젠 주부계층을 비롯한 가족단위 고객들로
타깃을 확장하려는 전략에서 비롯됐는데 대성공함
배우 사미자 기용은
당시 코카콜라 본사에서 직접 결정함
사미자란 배우가 가진
세련된 서울 아줌마, 주부 이미지에
코카콜라의 경제성을 부각시켰다고함
걍 아줌마들 노리고 만든건데 이게 먹힘
그래서 2011년 코카콜라 125주년 기념행사때
당시 전속모델인 2PM 과 함께
배우 사미자가 초청되기도함
그만큼 한국 코카콜라 역사를 이야기할 때
이 분 공헌도가 그만큼 컸다는 소리임
* 1980년대 후반 한일양국을 뒤흔든
코카콜라 I Feel Coke 캠페인
당대 한국의 경제호황기
일본의 버블경제시기
시대상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
1987년 일본에서 제작된 I Feel Coke 캠페인은
성공적인 광고 캠페인의 교과서로 회자되는데
코카콜라 탄생 100주년 및
일본 코카콜라 창립 30주년을 맞아 제작됨
1980년대 버블경제시절 당대 일본인들의 일상을 그려냄
감각적인 CM에 영상, 하이틴 스타 출연등이 화제가 되면서
당시에도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누렸고
그로 인해 일본에서 코카콜라 매출이 폭발함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호평을 받게 되는데
훗날 일본이 잃어버린 세월을 겪으면서
45세이상 일본인들에게 그 시절 향수에 젖는
대표적인 추억팔이 떡밥이 됨
유튜브에 가보면 수많은 영상들이 올라와있는데
댓글들 보면 45세이상 5060 일본인들이
단체 정모하며 친목질 장난아니게 하고 있음
이건 한국 코카콜라 광고 영상도 그대로 적용됨
일본 코카콜라 광고의 특징은
당대 하이틴 스타들 이외에도
바로 혼혈 일본인들이 많이 등장한다는 점
메인모델인 일본계 미국인인
켄 브레니스는 너무나도 유명했던 인물이고
(이 양반은 한창 주가 올리다 버블이 꺼지마자
바로 미국으로 돌아감 그래서 욕 존나 드셨다고함)
혼혈이나 외국인들이 많이 등장함
일본인들의 서구인에 대한 선망도 그렇고
아마 해외시장을 고려해서 그런거같은데
이에 대해 미국 본토에선 호평하기도 하지만
일각에선 상당히 조롱하며 디스하기도함
그도 그런것이 지금 짱깨들 물리치료 당하듯
저땐 일본이 미국에 경제적으로 두들겨 맞던 시절이였고
(1985년 플라자 합의는 일본 팔을 비틀어버렸고)
지금의 미국 러스트벨트 지역에선 걍 연례행사로
일본산 자동차나 전자제품 화형식하고
일본인들이 운영하던 상점 습격하던 시절이라
툭하면 미디어에서 일본을 대상으로 공격하고
희화화하며 조롱하는게 일상이여서 그럼
저 당시 미국 드라마나 특히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허구헌날 일본인 혹은 일본계가 빌런으로 등장함
이에 맞대응해서 저 당시 일본 애니메이션에선
툭하면 왜소한 동양인에게 건장한 금발 백인 빌런이
허무하게 당하는 장면이 여럿 나오고 ㅋㅋ
(홍콩 영화는 뭐 말할 것도 없고
여긴 걍 근육질 백인 = 빌런임)
아무튼 미국이 무서운건 한번 줘패는 대상은
아무리 정권이 교체된다해도 두들겨패는지라
공화당 집권기를 거쳐 민주당 클린턴 정부때도
일본에 대한 경제적 무역 통상압력은 더욱더 심화됨
I Feel Coke 캠페인의 한국버전도 나오는데
다들 잘 알겠지만 당시 서울 올림픽 공식 후원사 중
하나가 바로 코카콜라 였음 (올림픽 = 코카콜라니까)
그래서 일본에서 성공한 캠페인도
그대로 한국에도 적용해 발주해 제작함
그게 코카콜라 본사의 지침이였으니까
처음엔 일본 컨셉 그대로 가져다썼는데
점차 한국 버전도 별도로 제작하기 시작함
일본에 이어 한국에서도 대성공함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스타 등용문으로써
이 때 배우 심혜진, 이종원, 이일재 등이 급부상함
* 1988 서울올림픽 전후
다국적 외식브랜드의 한국진출
급속히 서구화되는 식생활
자연스레 콜라 소비도 급증
지난 정보글에도 적은 부분이고 다들 알겠지만
1988년 서울 올림픽 전후해서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한국 외식시장을 노리고
다국적 외식 브랜드들이 대거 진출하게 됨
1980년대 들어서 한국인의 식생활이
급속히 서구화되니 자연히 콜라소비도
과거에 비해 폭발적으로 증가함
I Feel Coke 캠페인 + 높아진 소득과 생활수준+
한국사회에 진출한 다국적 외식브랜드의 등장까지
모든 요소들이 딱딱 맞아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코카콜라는 최전성기를 구가하기 시작함
* 1991년 낙동강 페놀유출사건
TK등 영남지역을 중심으로
거센 코카콜라 & OB맥주 불매운동
두산때문에 유탄을 맞게된 타 보틀러들
특히 범양과 우성의 피해가 막심
그러다 코카콜라는 1991년 최대 위기를 맞이함
위에서 박용곤 회장 설명하면서 다뤘지만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이 터지면서
TK를 비롯 영남지역에서 두산에 대해 격렬히 반발하며
코카콜라와 OB맥주에 대한 거센 불매운동이 일어남
근데 문젠 이 사건으로 정작 애꿎은 업체들이 공격당함
두산은 수도권이나 강원지역만 담당하고
대구/경북/충청은 범양식품이 부산/경남은 우성식품이
각각 담당하고 있었는데 불매운동이 벌어지니
당연히 이들 기업이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된 것
그래서 범양, 우성은 지역일간지에
대대적으로 광고내면서 해명하기 시작함
우리랑 두산은 전혀 상관없다
두산은 수도권이랑 강원쪽만 맡는거다
그러니 코카콜라 불매는 말아달라 호소함
하지만 소비자들 입장에선 보틀링이고 뭐고
어쨋든 코카콜라 = 두산이란 인식이 강하니
코카콜라는 상당한 타격을 당했다고함
물론 코카콜라의 아성은 간신히 유지하긴 했지만
이 틈을 노려 펩시와 같은 기존 라이벌은 물론
콤비콜라, 8.15 콜라같은 국산 콜라들이 등장하며
공세적으로 마케팅을 펼치는데
이에 한국 코카콜라는 점유율도 큰 폭으로 하락하고
한동안 상당한 위협에 놓이게 됨
* 1996~1998년
경쟁자들의 위협
- 1996년 8월 해태 콤비콜라 출시
1970년대생 X세대를 겨냥해
컬트콜라를 내세워 마케팅
1996년 8월 시판된 해태음료의 콤비콜라는
미국의 코트 베버리지에서 콜라 원액을 들여와 생산함
이때 해태음료가 내세운 슬로건이
콜라의 문화혁명 : 컬트콜라 였는데
이는 당시 20대였던 신세대 X세대를 겨냥한 의도였음
그래서 나름 감각적인 광고로 주목받고
특히나 당시 MBC 청춘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에
협찬지원을 하여 다수 등장하면서
브랜드 인지도가 올라가면서
한때 점유율이 반짝 상승하긴 했지만
문젠 코카콜라나 펩시콜라에 비해 싱겁다는 비판과
지나치게 젊은층 위주 마케팅으로
매니아틱하다는 지적이 많았다는 점
20대도 25세이상 세대는 철저히 외면하면서 결국 실패함
여기서 결론
1. 결국은 맛이 좌우한다
2. 지나치게 매니아틱한 마케팅은 확장성이 없다
해태음료는 2011년 LG생활건강이 인수하면서
지금은 코카콜라와 한배를 타고 있는 상태임
이마트는 자체 PB상품인 이마트 e 콜라, e 사이다를 생산중임
콤비콜라의 후신이 바로 이마트 e 콜라임
- 1997년부터 시작된 펩시맨 열풍
한때 펩시콜라 점유율이 30%까지 상승
1996년 제작되어 한국에선 1997년 방영한
펩시콜라의 펩시맨 광고는
코카콜라의 I Feel Coke 캠페인과 함께
성공한 콜라 광고의 교과서로 꼽히는데
일본 광고계의 히트제조기라 불리는
아트디렉터 오오누키 타쿠야가 제작함
처음에 딱 공개되자 미국 본사에선
ㅅㅂ 이게 뭐냐 이거 니네 일본식 특촬물이냐?
왜케 유치하냐 별로네 부정적이였고
실제로 당시엔 미국에서도 초반 인기가 별로 없었는데
근데 이게 한국과 일본시장에 빵 터짐
1997년 1월 기준 코카콜라 77.6%-펩시콜라 20.9%에서
1997년 6월말 코카콜라 64%-펩시콜라 30%로 급등함
참고로 오히려 당시 펩시 홍콩본부에서는
한국에는 안맞는 광고같다 반대했지만
한국 펩시콜라 (+롯데칠성음료)가 밀어부침
결과는 대성공하면서 점유율도 급등하고
그 해 광고호감도 1위를 차지하고
어린이나 급식들, 20대들 사이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리며 유행했다고함
지금도 20대 후반이상 30대들에겐 친숙하다함
나도 어렸을 때 사촌형 집 가서 플스로 펩시맨 게임하고
펩시맨~ 이러면서 놀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있음
그리고 다들 잘 알겠지만 펩시콜라는
기본적으로 롯데리아에서 푸시해주기때문에
한국시장에서 일정부분 점유율 유지가 가능함
펩시에 부정적이거나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아예 롯데리아를 찾지않는 이유기도 함
- 1997년 보틀러 통합 : 직영체제로 전환
TK/충청지역 보틀러인 범양식품만 빠짐
그러다 코카콜라 본사 방침이 바뀜
그동안은 한 국가에서도
지역별로 라이센스를 주고 맡겼다면
이젠 그걸 하나로 묶어서 독점판매량 구축을 함
그 일환으로 우성식품, 호남식품
마지막으로 두산음료 (구 한양식품)까지 차례로 인수함
이때 코카콜라가 두산 품을 떠나게 되는데
코카콜라 입장에선 낙동강 페놀때문에
두산 이미지가 안좋으니 서둘러 손절하려 한거고
결정적으로 두산은 IMF 터지기 직전
그룹 재무상황문제로 서둘러 팔아버림
결과적으로 이게 신의 한수가 됨
IMF 터지기 직전 4300억이란 현금이 생겼으니까
그러다 TK나 충청지역 보틀러였던
범양식품은 절대 인수 안당해 싫어를 외침
그러자 코카콜라 본사는 ㅅㅂ 싫으면
코카콜라 계약해지나 해 으름장을 놓는데
범양식품은 정부와 언론, 여론을 상대로
다국적 기업 코카콜라가 죄없는 한국기업 압박해요 ㅠㅠ
동정심 유발 전략에 들어가기 시작함
이에 정부나 언론도 코카콜라에 부정적이고
결국 법원에서 계약해지 2년 유예판결을 받아냄
- 두산 + 우성 + 호남을 한데 묶어
한국 코카콜라보틀링 설립
IMF 직후 호주지역 보틀러에 매각
결국 범양식품 인수에 실패한 코카콜라는
두산음료 + 우성식품 + 호남식품을 묶어
한국코카콜라 보틀링이란 보틀러를 창립함
그리고 나서 바로 IMF 직후인 1998년 2월
호주지역 보틀러인 코카콜라 아마틸(CCA)에 매각함
그러다 2007년 아마틸이 LG생활건강에 다시 팔아버림
그래서 오늘날에 이르는건데 이건 또 설명하기로 하고
- TK/충청 보틀러였던
범양식품의 독립선언
1998년 4월 콜라독립 815 출시
애국주의 마케팅의 대표적 사례
1999년 TK와 충청 지역 중심으로
전국 콜라시장 점유율 13.7% 기록
그러다 1998년 4월 한국 코카콜라
TK/충청지역 보틀러였던 범양식품이
콜라독립 815를 출시하는데
노골적으로 콜라독립만세란 슬로건을 내세우며
한국 사람이 한국 콜라 사줘야 한다
애국주의 + 신토불이 마케팅을 펼침
다들 잘 알겠지만 원래 어려울수록
민족주의 + 애국주의 마케팅이 거셈
이건 우리만 그런게 아니라
미국, 유럽, 일본이 다 그렇고
특히나 애국주의 마케팅은
뭐 단기간에 가장 잘먹히는 전략인데
역시나 이게 먹혀들게됨
당시 IMF 위기로 국산품 애용이 화두가 되면서
콜라독립 815은 빠르게 주목받기 시작함
출시 1년만인 1999년 점유율 13.7%를 기록함
- TK를 정치적 심장부로 여기는
한국 우파정당에서 주목한 815콜라
한나라당 당무회의나 장외투쟁때 등장
뭐 다들 잘 알겠지만 한국 우파주류 정당에게
TK는 정치적인 핵심 기반임
미국 공화당에 텍사스가 중요한 듯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
현재 국민의 힘은 대구를 중시할 수밖에 없는데
(솔까 TK가 최후의 보루니까 ....)
범양식품이 대전 충남이나 특히 대구에 공장이 있다보니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도 일정부분 지원사격을 함
당무회의를 주재하거나 특히나
김대중 정부에 맞서 장외투쟁을 할땐
콜라독립 815가 다수 등장했다고함
재밌는 점은 대전충남쪽도 연고가 있다보니
당시 공동여당인 자민련에서도 애용했다는 점
자민련 회의나 행사때도 자주 등장했다고 함
이처럼 TK와 충청지역을 중심으로 선전하는데
연고지 마케팅이 ㅆㅅㅌㅊ로 먹히는데
당시 지역 일간지에 TK와 충청주민들 보고
우리 지역 콜라 애용해달란 마케팅까지 펼침
애국주의 + 연고지 마케팅 필살기를 꺼낸거지
- 그러나 맛이나 가성비 저하가 지적
결국 GG치고 콜라시장에서 철수
하지만 문제는 맛도 그렇지만
가성비가 너무나도 떨어졌다는 점
늘 말하지만 마케팅이 아무리 좋아도
식품 = 맛이나 가성비고 이게 떨어지는 순간
소비자는 한순간에 외면하는데
콜라독립 815가 바로 그러한 사례였음
일단 콜라맛 자체도 좋은 평을 얻지못했고
콜라용량 자체도 코카콜라에 비해 적다보니
10~30대 고객들이 외면하기 시작함
처음엔 날씬한 콜라니 뭐니 주목받았고
코카콜라도 이를 따라가기도 했지만
막상 맛도 그렇고 먹을 것도 없네
이러한 비판을 받으면서 결국 GG침
2004년 생산을 중단하고
2005년 범양식품은 부도처리되고
후에 웅진식품이 인수함
2016년 재출시되지만 반응은 ...
다들 잘 알겠지만 박근혜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 본인도 국산품만 쓰는걸로 유명하고
애국주의를 전면에 내세우고
한류나 한국 고유의 것 등을 굉장히 중시함
한류 관련 행사가 역대 최다 열리는 것도 이때고
이명박 정부때 추진된 한식 세계화도 계승하고
이러한 분위기에 발맞춰 웅진식품은
우리 콜라 + 편의점 공략 카드로 재출시함
하지만 반짝하고 큰 주목을 받지못함
어쨋든 이런 저런 도전들이 거셌지만
한국 콜라시장은 물론이고
탄산 음료시장에서 코카콜라의 아성은 단단함
이미 수십년간 코카콜라에 길들여진
한국인의 입맛을 바꾸기는 역부족이였으니까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코카콜라는 새로운 위협에 직면함
* 2000년대 거센 웰빙 몸짱 열풍
코카콜라 등 탄산음료가
건강의 주범으로 인식되면서
매출이 정체되거나 추락
2000년대 초중반들어 한국사회엔
거센 웰빙 몸짱 열풍이 불기 시작함
건강이 중요한 화두로 자리잡으면서
미디어에서도 대대적으로 다루고
관련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함
한국 건강정보프로의 양대 절대악
밀가루 그리고 탄산 음료
2003년 방영한 KBS 비타민을 필두로
현재까지 지상파, 종편, 케이블에선 틀었다하면
수많은 건강정보프로가 쏟아지게 되는데
우리나라 건강정보프로에게 양대 절대악이 있음
바로 밀가루와 탄산음료라는 점인데 ㅋㅋㅋㅋ
물론 밀가루나 탄산음료나 과다섭취는 금물임
그렇지만 우리나라 건강프로는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절대악으로 간주하고
공격적인 정보전달을 쏟아내고 있는데
보고 있으면 저걸 왜 시중에 팔지?
빨리 판매금지 시켜야하는거 아니냐 ㄷㄷㄷ
이런 공포감이 들 정도라고 하는데
우스갯 소리로 한국에 오래사는 외국인들이
본국 가면 그걸 먹어? 기겁한다는 말도 있음
물론 과다섭취 = 건강의 주범 맞는데
필요이상으로 공포감을 조장하고
다른 대체제를 팔아먹으려고 시도하는데
이러한 건강정보프로에 대해선 이제는
미디어 자체내에서도 부정적으로 보고 까는데
참고로 KBS와 SBS의 이러한 보도에 대해
뭐 맞는 말이긴 한데 니들이 할 말은 아니란 지적도 있음
자기들이 2000년대 초반부터 불 질러놓고
이제와서 종편 견제하려고 저러는거니까 ㅋㅋ
이러한 웰빙 열풍의 결과
당연히 이러한 웰빙열풍은
코카콜라에 직격탄을 날림
2002년만해도 365억의 흑자를 기록하다
한창 웰빙열풍이 거셀 땐 적자로 전환
2006년 무려 244억의 적자를 기록함
불과 4년 사이에 천당과 지옥을 오간 셈
그래서 어떻게든 비만과 당뇨의 주범이란
사회적 이미지를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던
한국 코카콜라는 2009년 당시 2PM를 모델로 기용
그들의 육체적 건강한 이미지를 내세워
우리 콜라 먹어도 몸짱 가능하다니까 ㅠㅠ
이런식의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발악함
다들 잘 알겠지만 탄산음료 모델 기용은
절대 뚱뚱한 연예인은 불가임
가뜩이나 이미지 안좋은데 낙인 제대로 찍히거든
근데 이건 한국시장만 그런게 아니라
다들 잘 알겠지만 글로벌 시장 전반이 이럼
그러다보니 대대적인 인력감축등 구조조정과
탄산음료 비중을 대폭 줄이는 등 몸부림 치고 있음
그러다보니 코카콜라 마케팅도
섹시한 건강미를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고
이건 뭐 1980년대부터 이미 진행했던거고
* 2007년 LG생활건강의
코카코카보틀링 인수
한국 코카콜라의 새로운 보틀러
현재 한국 코카콜라는?
그런 와중에 2007년 LG생활건강이
응진그룹을 제치고 한국코카콜라 보틀링을 인수함
그리고 코카콜라음료로 명칭을 바꾸게 되는데
한국 탄산음료시장이 LG생건 - 롯데칠성 체제로 재편됨
1997년 직영체제로 전환할 당시보다
파격적인 할인가(?)로 LG생활건강이 산 걸로 알려짐
그만큼 웰빙열풍때문에 코카콜라가 많이 위축됐단 소리
- 현 한국 코카콜라 양대 여성수장
코카콜라음료 (LG생건) - 이정애 대표
한국 코카콜라 - 최수정 대표
현재 한국 코카콜라의 양대수장은
모두 여성 CEO가 맡고 있는데
코카콜라 음료 이정애 대표의 경우
정통 LG맨으로 LG생활건강에서
마케팅 상무와 부사장을 지낸 인물임
한국 코카콜라 최수정 대표는
한국 코카콜라 브랜드 매니저와
마케팅 상무를 지낸 인물로
두 양반 다 마케팅쪽에 잔뼈가 굵은 인물임
뭐 마케팅쪽이 원래 여초기도 하니까 ㅋㅋ
한국 코카콜라가 어디에 중점을 두는지 알 수 있음
(블라인드 가보니 말들이 갈리던데
현직자 계시면 피드백좀 부탁드림 ㄳㄳ)
오늘은 한국 콜라시장의 역사를
코카콜라 위주로 풀어봄
한국에 어떻게 콜라가 전파되어
어떤 과정을 거쳐 유행했는지
그리고 코카콜라는 어떤 전략을 통해
한국 시장을 공략했는지 알아봄
오늘도 역시나 긴 글 읽어줘서 고맙고
다음에 다른 정보글로 돌아옴
3줄 요약
1 한국에서 1945년 미군정이후 콜라 유입
2 코카콜라는 1968년 들어옴
3 현재까지 콜라시장 점유율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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