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이번에 다룰 주제는
바로 짜파게티의 역사와 그로 인해
짜장라면 시장을 평정한 농심의 전략임
짜파게티가 어떻게 탄생했으며
어떻게 무수한 라이벌들을 제치고
짜장라면 시장 왕좌를 지켜왔는지
지난 역사에 대해 알아보면서
그리고 그에 대한 농심의 전략에 대해
종합적으로 알아보는 시간을 가짐
정보글의 목차는 다음과 같음
[1] 짜파게티의 역사와 실적
[2] 짜파게티를 앞세운
농심의 전략
뭐 이렇게 2개 파트로 정리할텐데
그냥 이 새끼가 이 순서로대로 쓰는구나
그렇게만 이해하시면 됨
* 그리고 너무 길다고 생각하면
맨 마지막에 요약해놓은거 있으니
그거 보시길 권함
# 짜파게티의 역사와 실적
짜파게티의 역사를 논하기 앞서
먼저 짜파게티를 탄생시킨
농심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자면
다들 알겠지만 농심은 롯데에서 분리됨
농심 창업주 신춘호 회장은
롯데 신격호 회장의 10살 어린 동생임
하지만 두 사람의 사이는 파국으로 치닫게됨
이유는 바로 라면산업 진출문제때문
한국 라면산업의 태동
1960년대 당시 박정희 정부는
고질적인 쌀 생산량 부족 문제를 해결키위해
이른바 혼분식장려 정책과 운동을 펼침
요즘엔 거의 비만의 주범이나
건강의 적으로 악마화된(?) 밀가루가
당시엔 맛이나 영양이 우수하다며 권장시됨
이때부터 한국인들의 밀가루 소비량이 늘면서
식생활이 크게 바뀌게 됐다고 평가됨
이런 시대적 흐름에 급성장한게
바로 라면산업인데 선두주자는 삼양이었음
삼양 창업주 전중윤 회장은
과거 일본 출장중 먹었던 라면맛을 떠올리고
맛도 좋고 한국에서도 먹히겠다 싶어
당시 정권의 실세였던 김종필 중정부장을 찾게됨
라면의 우수성을 역설하던 전중윤 회장은
망설이는 김종필 부장에게 라면을 시식케하는데
좀전까지 망설이던 김종필 부장이 먹고나서 OK
정부로부터 5만달러 (후에 5만 달러 추가)를 융통해
라면기계를 사오고 라면공장을 지었다고함
근데 문제는 바로 박정희 대통령의 반응
초반엔 엄청나게 격노하셨다고함
지금 나라에 돈이 없는데 저깟 튀김국수
도입한다고 몇만 달러를 가져다 쓰는거냐
그래서 김종필 부장이 식량난 해결과
미래 성장산업으로 괜찮다며 설득했다 알려짐
그리고 막상 드시고나서 입장이 달라지셨다함
그 후로 삼양라면을 팍팍 밀어주심
특히나 식량난 해결과 산업발달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박정희 대통령은 수시로
삼양공장을 방문하는데 초반엔 국민들이
라면에 거부감을 거부감을 느끼는 통에
라면소비가 부진하자
한국인은 맵고 짠걸 좋아한다
고춧가루좀 더 넣어라 권하셨고
정말 그렇게 했는데 대박이 났다고함
그래서 흔히 한국 특유 매운라면의 시초를
박정희 대통령이라고 라면업계나 언론에서도 평가함
참고로 대관령 삼양목장도 산지 개발과
목축업 성장을 위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라고 알려짐
아무튼 이렇게 본격적으로 라면시장이 태동하여
급격히 성장하는 걸 눈여겨 보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농심의 창업주 신춘호 회장임
농심의 라면사업 진출
그래서 형인 신격호 회장을 설득했다고함
지금이 라면사업 진출할 기회다
우리가 크려면 지금 뛰어들어야한다
하지만 신격호 회장은 사업성이 없다며
완강히 거부했고 형제는 갈라지게 됨
그렇게 형과 충돌끝에 독립적으로
라면사업에 진출하고 회사를 차리는데
바로 1965년 설립된 롯데공업임
하지만 형인 신격호 회장이 아니 ㅅㅂ
나 싫다고 독립해나갔으면서
왜 롯데란 이름을 쓰냐 가만 안둔다 버럭하자
1978년 지금의 농심으로 사명이 바뀌게 됨
사실상 형제관계는 의절한 상태였으며
신춘호 회장은 제사도 불참할 정도였다함
이렇게 갈라진 형제관계는
55년이 지나도 해결안됨
신격호 회장 별세 후에도
신춘호 회장은 끝내 불참하기로 결정함
대신 아들인 신동원 농심 부회장과
신동윤 율촌화학 부회장을 보내
빈소를 지키게하는데 이러다보니
새삼 롯데가 형제관계가 부각됨
근데 아이러니한 점은 농심이
창사초기 내세웠던 마케팅 전략이
바로 형제간 우애라는 점
농심라면 포장지 자체도 그렇거니와
1975년 선보인 TV 광고도 그랬는데
당시 형님 먼저 아우 먼저란
유행어까지 나오게됐다고함
그러다보니 요즘까지도
이에 대한 해석과 평가가 분분함
형제간 관계 복원을 꾀한것이다부터
고의적으로 디스용이다 한방 먹인거다
걍 그딴거없이 그냥 단순 마케팅이다 등등
당시 삼양우위의 라면시장에 대응
짜장라면이란 승부수를 던짐
하지만 1960~197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라면시장은 삼양의 우위였고
농심은 그러한 한국 라면시장의 판을 흔들고
삼양을 꺾을 카드를 모색하는데
그렇게 생각해낸 게 바로 짜장면이였음
당시만 해도 짜장면은
대표적인 고급외식메뉴중 하나로
생일이나 입학식, 졸업식, 군 입대직전
상견례 등등에서 주로 먹던 음식이였다고함
그래서 그 시기 세대들에게 짜장면은
선망과 동경의 음식이였다고 알려짐
그렇게 1970년 롯데짜장면을 출시함
한국 최초 인스턴트 짜장면임
이를 개발하기위해 연구원들이
전국방방 곳곳을 돌아다니며
소문난 중국집을 찾아다니면서
벤치마킹했다고 알려지며
신춘호 회장을 비롯 당시 임직원들이
토나올 정도로 (?) 짜장면을 먹었다고함
마침내 롯데짜장면은 런칭하자마 히트를 침
공장을 최대치로 가동해 하루 최고 9000여 박스를
생산할 정도로 주문이 쏟아졌다고 알려짐
1972년 대대적으로 TV와 신문광고를 했으며
무료 시식회를 진행하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함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양을 이기진 못함
이어 1978년 삼선짜장면을
1983년 농심짜장면을 연달아 출시함
하지만 반응이 썩 좋지못했다고함
이에 신춘호 회장과 임직원, 연구진들은
새로운 짜장라면 개발에 몰두하게됨
1984년 짜파게티 출시
그렇게 1984년 3월 출시된게 짜파게티임
짜파게티 스프의 경우
우연히 연구원이 커피를 타 마시다
커피 알갱이처럼 만든 스프를 생각해서
개발한 걸로 알려져있는데
최초로 라면 스프제조에
그래뉼 공법을 도입한 걸로 유명함
그렇게 모래처럼 고운 가루 타입의 과립 스프는
물에 잘 풀어져 짜장라면에 제격이였음
많이들 알겠지만 짜파게티라는 제품명은
짜장면 + 스파게티 합성어임
짜파게티의 스프맛은 볶은 간짜장 맛이라는게
농심측의 공식적인 설명임
짜파게티에 곁들이는 조미유도 인기에 한몫함
고소함을 위해 냄비를 불에서 내린 직후
기름을 넣고 면에 비비는 방식이였는데
당시 대중들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함
당시 짜파게티 가격은 기존 짜장라면보다
50원이 비싼 200원임에도 불구하고
들여놓고 진열하기가 무섭게 팔렸다고 알려짐
하지만 짜파게티의 성공에 대해
바로 기존 중국집들의 불만도 대단했다함
뭐 그전부터 짜장라면이 나오긴 했지만
짜파게티의 성공으로 기존 짜장면 매출이
급격하게 하락하고 굳이 왜 중국집까지 가서
비싼 짜장면을 먹어야하나
회의적인 여론이 확산됐다고함
그러다보니 농심의 행태에 대해 분노하고
팔지말라는 압력이 들어올 정도였다는데
참 생각해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함 ㅋㅋ
신제품이나 신기술이 나오면 그로 인해
피해를 입는 기존 계층이 생겨나고
그들은 기득권 지키려고 발악하지만
결국은 시대흐름대로 세상을 돌아간다는거 ㅋㅋ
짜파게티의 성공으로 인해
기존 중국집들은 배달시스템을 강화하고
다른 중식메뉴를 활성화시키는 등
또다른 생존방식을 모색하게됨
더이상 짜장면 자체로 승부보기 힘드니까
짜파게티의 경우 강부자 마케팅으로 유명함
당시 농심의 경우 전속모델이
배우 강부자 선생이였는데
후덕한 서민아줌마 스타일이란 점으로 인해
1981년부터 1994년까지 무려 13년간
농심 라면 전속모델로 활동했다고함
그래서 본인도 아직까지 농심라면만 드신다함
타사 라면은 입에 안맞는다 하셨을 정도
후에 강부자 선생은
농심모델 덕을 톡톡히 보는데
현대 창업주 정주영 회장이 정치할 당시
통일 국민당에 합류하여
비례대표로 국회의원까지 지냄
13년 라면모델로 쌓인
친근한 서민적 이미지가
통일 국민당 득표에 도움이 됐거든
사실 그래서 농심광고모델을
부득이하게 94년에 마친거라고 함
아무래도 국회의원이 모델로 활동하기는
정치적 부담이 클테니까
삼양과 오뚜기를 비롯한
경쟁사들의 짜장라면 시장진출
짜파게티가 신드롬을 일으키자
당연히 경쟁사들은 발끈했고
특히나 당시 농심과 라이벌이였던
삼양도 1985년 짜짜로니를 런칭하면서
짜장라면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함
삼양 짜짜로니의 경우
짜장면+마카로니의 합성어로서 출시 당시
짜파게티 카피캣이란 지적이 많았다함
농심 짜파게티가 강부자를 내세워
가족적인 이미지로 광고를 제작했다면
삼양 짜짜로니의 경우 이경규를 내세워
코믹한 이미지로 차별화했다고함
아무래도 타깃층이 농심은 가족고객을
삼양은 젊은층 고객을 하다보니
그러한 전략으로 나간건데
TV광고도 짜파게티는 가족코드로
짜짜로니는 개그코드로 나감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결과는
농심 짜파게티의 압승으로 끝남
참고로 저 광고가 방영할 당시
경규옹의 나이가 28살이였다고함
지금으로 치면 배우 유승호나 박보검
서강준이랑 동갑임 ㅋㅋㅋㅋㅋㅋㅋ
흔히 기업 역사에 관해 다룰 때
많은 사람들이 와 20대나 30대 나이에
어떻게 저런 사업들을 했냐 신기해하는데
많이들 아시겠지만 옛날 2030이랑
지금 2030은 너무나도 다름
그땐 20대 중반이라도 어른 취급했지만
솔까 요즘은 그게 아니잖음 ㅋㅋㅋㅋ
지금은 30대 초중반까지도 외모적으로
(관리나 시술여부에 따라) 어려보이기도 하고
일단 결혼연령자체도 많이 다르고..
후에 근데 그나마 삼양 짜짜로니는
아직까지 남아있으니 그나마 괜찮은데
다른 짜장라면들은 타도 짜파게티를 내걸고
공격적으로 출시됐지만 결국 GG치고 단종됨
현재까지도 짜파게티의 점유율은 ㅆㅅㅌㅊ임
뭐 자사 짜왕한테 밀리기도 했지만 ㅋㅋ
짜파게티도 대단한거고 그동안 그래도 버티고 있는
짜짜로니도 나름 평가할만하다고 생각함
농심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
인지도있는 아역배우들을 기용
요리사 컨셉으로 "일요일은 짜파게티 먹는날~"
"짜라짜라 짜짜짜 짜~파게티~”
“일요일은 내가 짜파게티 요리사!”
지금도 회자되는 광고카피들을 앞세워
광고를 제작하는데 즉 10대 급식들도
충분히 해먹을 수 있다 그만큼 쉽고 간편하다
이 점을 어필한 것이라고 함
참고로 저때 출연한 배우들 지금 다 30대 넘김 ㅋㅋ
정태우 성님은 뭐 82년생으로 39살이시라함
요즘 이 양반들 다 뭐하고사시는지 모르겠네
아무튼 이러한 짜파게티 광고는
당시 잘나가는 아역배우라면
한번쯤 찍는게 국룰이였다고함
이렇듯 짜파게티 신드롬으로 재미본 농심은
1988년 짜장범벅 (현 짜파게티 범벅)
1992년 짜장 큰사발 (현 짜파게티 큰사발)
2004년 사천 짜파게티 (현 사천요리짜파게티)
2012년 사천오피짜파게티 큰사발 등등
연이어 다양한 버전의 컵라면을 출시하여
컵라면 시장까지 선점하기에 이름
이러한 짜파게티의 성과를 주도한
인물이 신춘호 회장임
뭐 많은 사람들이 아는 부분이겠지만
이 분의 경우 제품명부터 디자인부터
광고 카피까지 모두 관여하는 걸로 유명함
짜파게티는 물론이고
농심 전 제품 개발과 출시,마케팅이 다 그랬음
가령 역대 누적판매량 1위인 신라면은
그 명칭부터 디자인, "사나이 울리는"
광고 카피부터 모두 신 회장이 고안해냄
그러다보니 다소 올드하다, 촌스럽다
뭐 회장이 이런데까지 관여하냐
이런 평가도 있지만 아직까진 성적이 좋다보니
내부 분위기는 긍정적이라고함
다만 최근들어선 연배가 있으시다보니
과거처럼 관여는 안한다는 의견도 있음
신춘호 회장에게 짜파게티는 각별한 존재임
짜파게티란 제품명부터 스파게티처럼 짜장 소스를
면에 비벼먹는다는 점에서 착안해 지어졌으며
짜파게티의 강부자 마케팅이나 광고카피
상당부분이 신춘호표 작품으로 알려져있음
그리고 너구리 (1982년) 안성 탕면 (1983년)에 이어
출시된 짜파게티에 온갖 지원을 아끼지않았다고함
(그러다 1986년 신라면이란 홈런이 터진거고)
그 결과 1980년대 들어 농심이 라면시장을 제패하는데
짜파게티 또한 지대한 공헌을 한 걸로 유명함
1970년부터 판 뒤집기에 올인해
짜장라면이란 승부수를 던졌던 신춘호 회장 입장에선
14년만에 성과를 거둔 것이라고 볼 수 있음
현 짜파게티의 실적
2020년으로 짜파게티는 출시 36주년이 됨
짜파게티 누적 판매량은 75억개에 달하는데
이는 지구둘레 40배 가량이나 된다고함
2019년 기준 연 매출약은 무려 1850억에 달하고
해외매출액만 150만 달러 (대략 18억)에 이름
참고로 역대 라면 1위는
짜파게티보다 2년뒤에 나온 신라면
1986년 출시된 이후 누적 매출만 13조 5000억
누적 판매량만 325억개에 달하고
2019년 매출도 7600억원에 달함
짜파게티도 짜파게티지만 신라면 존나 무서움
신라면 출시 이후 농심이 현재까지
라면시장 패권을 잡고 군림하고 있음
짜파게티 국가별 매출현황은
미국이 거의 절반은 먹고 들어감
그 이유가 바로 뒤에 가서 설명하겠지만
영화 기생충 짜파구리 영향인데
호주도 미국과 비슷한 이유임
실제로 차이나 바이러스 혹은
우한 코로나가 전세계를 강타한 2020년
다른 수출품목은 직격탄을 맞아 휘청거리는데
라면산업같은 경우는 폭발적으로 증가양상임
특히나 일본과 중국시장이
그 증가세를 캐리하는가운데
기생충의 영향으로 농심의 경우
미국지역 매출상승세도 매우 뚜렷함
1분기 27%, 2분기 46% 증가했으니까
지금까지 한국 라면산업의 형성이나
농심의 라면시장 진출
짜파게티의 역사와 성과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럼 과연 농심은 짜파게티를 앞세워
어떤 전략을 펼쳐서 라면시장을 제패한걸까
[2] 짜파게티를 앞세운
농심의 전략
1960~1970년대 라면시장은
압도적인 삼양의 우위
1980년대 들어선 농심의 추격
1986년 신라면 출시나
1989년 우지파동 이전에도
이미 농심이 우세를 잡기시작
뭐 위에서도 설명했고 다들 잘알겠지만
1960년~1970년대 한국 라면시장은
압도적으로 삼양이 우위를 확보함
1969년 삼양 점유율은 무려 83%에 이름
하지만 1980년대부터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함
너구리 (1982년), 안성탕면 (1983)
짜파게티 (1984)가 연달아 히트치면서
콩라인이였던 농심이 거세게 추격을 시작
흔히 우리가 하는 말로
1989년 우지파동이후부터
농심이 삼양을 따라잡고 추월했다 하는데
그건 아님
물론 1989년 우지파동으로 인해
양강구도를 형성하고 있던 삼양이
점유율이 폭락하면서 경쟁에 밀린건 사실이지만
이미 그전부터 농심이 점유율에선
상당부분 따라잡거나 심지어 추월하기도함
이미 신라면 출시나 우지파동 일어나기전
1985년부터 농심이 시장점유율 선두에 올라섬
즉 그전부터 삼양은 서서히 밀리고 있단 소리
그러다 신라면 나오고 3년 뒤 우지파동 터지면서
걍 결정적 타격을 입고 찌그러진거지
1980년대 농심의 4대 천왕
너구리, 육개장, 안성탕면, 짜파게티
특히 1984년 짜파게티 신드롬 영향으로
1985년 시장점유율 1위로 올라섬
그렇게 농심이 치고올라간데는
1982년부터 출시된 너구리를 시작으로
1984년 짜파게티의 공헌이 컸으며
특히나 짜파게티 신드롬 직후인
1985년부터 한국라면시장을 제패함
그렇다면 여기서 농심과 삼양의 차이는 뭘까
추격자로서 신제품 개발과
이슈파이팅에 기민했던 농심
기존 강자로서 기득권에 안주해
이슈파이팅에 둔감했던 삼양
뭐 상경계열 전공이라면
아마 삼양의 실패사례에 대해 잘알텐데
한때 점유율 80%에 달했던 삼양이
1980년대 들어 농심에 따라잡힌건
바로 기득권 안주와 이슈파이팅에 둔감했던 탓임
이게 무슨 개소리냐 하면
후발주자이자 추격작 포지션인
농심 입장에선 어떻게든 시장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보하고
삼양 한번 이겨보려고 별의별 발악을 다함
그래서 신제품 개발에 열을 올리고
1980년대들어 연달아 신제품을 런칭함
그리고 짜장라면 시장이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선점함
반면 삼양은 삼양라면과 쇠고기면
이 2개 대표제품으로 버티기만 일관함
그리고 1980년대 들어선 아예
농심이 먼저 치고 들어오면 뒤늦게
이에 뒤따라가는 식으로 대응함
가령 농심이 짜파게티로
짜장라면 시장을 개척하니
짜짜로니로 대응하는 식으로 말임
이렇게 경쟁자가 먼저 치고들어간 다음에
뒤따르는 식의 대응은 다들 잘 아시겠지만
100% 뒤쳐질 수 밖에 없음
너무나도 잘아시는 부분이겠지만
무슨 일에 있어서도 이슈선점. 선빵이 중요함
뭐 실제 주먹다짐에선 얻어터지는게 유리하지만 ㅋㅋ
일단 무슨 일에 있어 이슈를 선점해야함
그리고 그 이슈를 상대방에게 선점당했다고하면
절대 거기에 말려들지말고
차라리 다른 이슈를 던져서
분위기 전환을 해야 한다고 많이들 말함
가령 농심이 짜파게티로 짜장라면 시장이란
이슈를 던졌다면 삼양은 거기에 말려들지말고
다른 신제품이나 시장을 개척하는게 맞는거임
괜히 농심이 하니까 따라했다
카피캣 소리나 듣는거지
상대방이 이슈를 선점했을 때
그대로 따라가는건 불리
오히려 상대를 부각시킴
차라리 정면으로 까거나
무시하는 전략이 유리
잠시 삼천포로 빠져 예를 들자면
이건 정치나 선거도 마찬가지임
상대방이 어떤 이슈를 선점하는 순간
거기 절대 말려들지말고 다른 이슈로
분위기를 전환시켜야함
개인적으로 문재인보다도
이재명이 더 위험하고 집권하면
지금보다도 더 나라망친다고 생각함
(흔히 바닥이라 생각했는데
그보다 더 바닥은 항상 있기 마련이니까)
가령 기본소득제? 솔직히 이거하면 나라망함
그냥 내가 우파라서 반대하는게 아니라
재원조달이나 지속가능성 모두 현실성이 떨어짐
앞으로 인구구조나 생산가능 인구를 봐도 답안나옴
솔까 현행 복지를 유지하는 것도 힘듬
나중에 기본소득에 관한 별도 정보글 쓸 생각인데
문재인이 사회주의의 문을 열었다고하면
만약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이재명이 집권해서
180석으로 기본소득제 밀어부치는 순간
사회주의 최종완성되는거임
이건 나중에 우파로 정권교체된다해도
함부로 없애거나 바꿀 수도 없음
한번 세금맛 본 국민들이 가만히 있겠음?
포퓰리즘이 그게 무서움
주기는 쉬운데 나중에 안주기는 불가능함
그랬다간 선거에서 작살날테니까
근데 이 기본소득은 수년전부터
이재명이 제기한 거의 특허낸 이슈임
거의 모든 국민은 그렇게 인식하고 있음
그럼 이걸 아예 정면으로 까거나
무시하거나 다른 이슈로 맞받아쳐야함
그런데 통합당은 요즘 기본소득 도입한다 만다
말들이 많음 즉 이재명표 이슈를 따라가는건데
그건 이재명 몸값만 올려주는거임
우파라면 이런 망국적인 포퓰리즘은
국가보안법 폐지나 주한미군 철수와 비슷하게
아니 어쩌면 더한 사안이라고 보고
사생결단하고 막아야 할 문제임
대중들 머릿속엔 기본소득 = 이재명 이런데
저걸 이슈화하는거 자체가 참 답답함
그냥 몽상가의 뻘소리 정도로 치부하고
먹금해야하는데 그걸 덥썩 물어버리니
이게 이슈화되면서 오히려 이재명에 대한
화제성만 올라가버리는 효과를 가져옴
지난 몇달간 기본소득이 이슈가 되면서
이재명 숱하게 방송 출연하고 개인홍보함
그렇게 화제성이 높아질수록 지지율은 올라감
이재명이 경선에서 나가떨어져도
기본소득이란 이슈자체는
이미 민주당이나 급진 좌파진영의 프레임임
10년전부터 무상복지 카드로 재미본 애들이
또다시 포퓰리즘으로 저러고 나올텐데
기본소득 + 복지강화 = 세금폭탄
이러한 프레임을 정면으로 내걸고
우파의 핵심지지층인 부유층이나
고소득층들의 공포를 자극하여 결집시키고
중산층까지 끌어들여서 1:1 대립각을 세우고
결사적으로 막거나 아니면
아예 철저히 무시하는게 답인데
개인적으로 참 답답하게 생각함
농심과 삼양의 이전투구도 바로 이러함
1960~70년대 라면시장을 보면
삼양이 시장을 선도해가면서 제품을 출시하면
농심이 후발주자로 그걸 따르는 양상인데
농심이 짜장라면으로 치고 나가면서부턴
삼양이 후발주자로 전락해버림
그러니 당연히 승패가 갈릴 수 밖에 없지
위에서 기본소득 = 이재명 이 공식처럼
이미 짜장라면 = 농심 이니까
차라리 삼양이 짜장라면이란
새로운 이슈에 휩쓸리지말고
다른걸로 치고나왔다면 좀더 나았을거다
이런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있음
중독성 강한 광고카피
일요일 = 짜파게티 먹는 프레임 설정
뭐 나보다도 더 잘아는 사람들 많을테지만
농심 짜파게티 광고전략도 매우 탁월함
위에서 언급했지만 "일요일은 짜파게티 먹는날~"
"짜라짜라 짜짜짜 짜~파게티~”
“일요일은 내가 짜파게티 요리사!”
이런 중독성 강한 광고카피와 CM으로
대중들 뇌리속에서 확실히 각인시킴
십수년전만해도 대표적 수능금지곡이였다함
그리고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된
2004년 이후로는 사라진 프레임이긴 한데
한때 짜파게티 출시 초기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농심은 짜파게티 광고를 하면서
항상 일요일 = 짜파게티란 프레임을 강조함
마치 일요일엔 짜파게티 꼭 먹어야할 거 같고
그래야 특별할 것처럼 대중들을 현혹시킴
왜냐면 주6일 근무제하던 시절엔
실질적인 휴일은 일요일뿐이였기때문에
짜파게티 먹는 날은 곧 설레는 휴일(?)
이런 개념으로 접근한거임
짜파게티 이미지 자체를 긍정적으로 바꾼거지
그래서 농심은 짜파게티 광고도
나름 치밀하게 계산하고 넣었는데
토요일 저녁 프라임 타임대에 배치함
특히 토요일 저녁 예능이나
주말극 시간대 앞뒤에 집중배치했다함
그럼 사람들이 보면서 내일이 일요일였지?
그럼 짜파게티 먹어야하나 이런 심리를
자극시켰고 그로 인해 짭짤한 재미를 봄
모디슈머 마케팅과
미디어 컨텐츠의 결합
아마 짜파게티 등 라면산업을 이야기할 때
모디슈머 이야기는 꼭 나와서 잘알텐데
모디슈머란 제조업체가 제시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사용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제품을 활용하는 것으로
관습이나 광고 등에 현혹되지 않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체험적 소비형태를 말함
그러한 대표적 사례가 라면임
흔히 라면을 즐길 때 그 자체로도 즐기지만
서로 다른 2가지 라면이나
라면에 해산물같은거 곁들여먹잖음
90년대부터 전해졌단 짜파구리는
모디슈머의 대표적 사례임
짜파게티 + 너구리의 결합으로 알려진
이 레시피는 원래 군부대나 군필자들을 중심으로
널리 퍼지고 퍼져 전해진 것이었는데
그러다 이게 2013년 당시 인기예능인
MBC 아빠어디가에 나오면서 빵 터짐
모디슈머 + 미디어의 결합 이라고 볼 수 있음
짜파구리 신드롬이 불릴 정도로
짜파게티와 너구리 매출이 폭발적으로
동반상승했으며 한때 신라면 매출을
일시적이지만 제낄 정도로 파급력이 대단했음
그로 인해 방송인 김민수 + 가수 윤민수가
광고모델로 발탁되어 광고를 찍을 정도
그러고나서 한 몇년 묻히나 싶었는데
7년 뒤 영화 기생충에서 화제가 되면서
짜파구리가 다시 주목받게됨
그로 인해 해외매출이 급상승하게됨
특히나 채끝살까지 곁들여진
짜파구리로 채끝살 매출까지 덩달아 증가함
물 들어올때 노 젓는다고 농심은
아예 짜파구리 컵라면까지 출시하면서
이러한 신드롬에 편승함 ㅋㅋㅋ
물론 평가는 의견이 분분함
그에 대한 판단은 각자서 알아서하시고
그러다보니 요즘들어 농심은
미디어를 활용한 PPL를 강화하고 있는데
그로 인해 매출로는 재미봤지만
일각에선 거부감이 느껴진다는 평도 있음
너무 노골적으로 나가니까
오히려 역효과를 우려하는 의견도 있다던데
뭐 그건 신중하게 봐야할 사안이라봄
일단은 재미 짭짤하게 보고 있으니까 ㅋㅋ
군납에서도 돋보인
농심 짜파게티
그리고 농심같은 경우는
많이들 알겠지만 과거부터 지금까지
군납시장에도 힘을 많이 주곤 했는데
농심 짜파게티의 경우
항상 PX판매 최상위권을 차지함
위에서 언급한 짜파구리도
대표적인 군대음식 중 하나고
불닭게티 (불닭볶음면 + 짜파게티)
간파게티 (간짬뽕 + 짜파게티)
치즈짜장범벅 ( 치즈볶이 + 짜파게티 범벅)
이렇게 짜파게티 시리즈와 결합된
조합 등이 굉장히 많은데 이러한 영향으로
짜파게티가 군납라면 1위를 차지했단 분석임
아무튼 저러한 군납시장의 영향으로
짜파게티는 특히 남성 소비층들에게
폭넓은 사랑을 받는걸로 유명함
그러다보니 기업들이 군납시장에도
심혈을 기울이는게 바로 그런 맥락때문임
군 장병들 자체로도 고객이지만
전역하고 난뒤 잠재적인 고객들이거든 ㅋㅋ
보통 어릴때까진 라면 별로 안좋아하다
군대갔다온후 본격 입문하는 케이스가 많다고함
이처럼 오늘은 36년째 사랑받고있는
짜파게티의 역사와 매출을 알아보고
1960~70년대 삼양우위의 라면시장에 대응해
짜장라면이란 승부수를 던진
농심의 전략에 대해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짐
이상으로 오늘 정보글을 마치겠음
오늘도 역시나 긴 글 읽어줘서 고맙다
다음엔 새로운 정보글로 찾아온다
7줄 요약
1 짜파게티는 36년의 역사를 자랑함
2 누적판매량 75억개 작년 매출은 1850억임
3 짜장라면 시장을 개척하고 선점함
4 농심은 1980년대 중반 라면시장을 석권함
5 여기엔 농심의 치밀한 전략도 한 몫함
6 경쟁자에 비해 신제품 개발도 적극적이였고
7 무엇보다 이슈파이팅 능력이 ㅆㅅㅌ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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