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이번에 다룰 주제는
팔도 비빔면과 한국 비빔면 시장에 관해서임
팔도 비빔면이 어떤 역사를 가지고
오늘날까지 비빔면 시장을 장악하고있는지
팔도 (한국 야쿠르트)의 전략에 대해 알아봄
[목차]
[1] 팔도 비빔면의 역사
[2] 박터지는 비빔면 전쟁
뭐 이렇게 2개 파트로 정리할텐데
그냥 이 새끼가 이 순서로대로 쓰는구나
그렇게만 이해하시면 됨
* 그리고 너무 길다는 사람들은
맨 마지막에 요약해놓은거 있으니
그거 보시길 권함
팔도 비빔면의 역사
비빔국수의 인스턴트화
과거 비빔국수는 골동면 혹은 국수비빔으로 불림
조선의 세시풍속을 기록한 책 동국세시기엔
메밀국수에 잡채와 배, 밤, 쇠고기, 돼지고기 섞은 것을
골동면이라 한다 라고 적혀있으며
시의전서란 책에선 황육을 다져 재어서 볶고
숙주와 미나리를 삶아 묵을 무쳐 양념을 갖춰 넣은 다음
국수를 비벼 그릇에 담고 그 위에 볶은 것과 고춧가루,
깨소금을 뿌리고 상 위에 장국을 함께 놓고 먹는다고 기록함
이렇듯 비빔국수는 민간에서도 즐겨먹었지만
왕실에서도 즐겨먹었다고 알려져있는데
조선 정조의 모후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엔 간장양념을 얹어먹는 골동면이 기록됨
왕후나 후궁들이 간택되어 입궐하면서
사가에서 먹던 골동면을 들여온 것으로 추정됨
비빔국수를 흔히 여름철 음식으로 여기지만
사실 팥죽과 더불어 동짓달 먹던 음식이라고함
여름 삼복 더위에 이열치열로 뜨거운 보신탕을 먹듯이
동짓달에는 이한치한의 의미가 담겨져있는
골동면 (비빔국수)와 냉면을 즐겨먹었다고 알려짐
하지만 오늘날의 고추장 (밀가루) 비빔국수와는 다름
한국전 이후 미국의 식량원조
그로 인한 밀가루의 대량유입
혼분식 장려운동과 함께
폭발적으로 증가한
한국인의 밀가루 소비
한국에서 밀가루 소비가 촉진된 계기는
한국전 이후 대대적으로 진행된 미국의 식량원조임
당시 한국은 전쟁 후 폐허속에 절대빈곤에 허덕이며
최악의 식량난으로 아사자들이 속출하고 있었고
미국은 한국이 겪고있는 최악의 식량난도 구제할 겸
본국의 만성적인 잉여농산물 문제해결을 위해
대대적으로 식량원조를 했고 그 결과
1950년대 중후반에 이르러 식량난은 상당부분 해소됨
그렇게 본격적으로 한국에 들여오기 시작한
미국산 밀로 인해 이른바 삼백산업이 발전함
삼백산업이란
미국 원조물자인 밀가루, 설탕, 면화등에 의존한
소비재산업을 뜻하는 말로 오늘날 경제성장의 토대가 됨
이승만 정부때부터 시작해
박정희 정부때 대대적으로 추진되던
혼분식 장려정책과 운동 또한
쌀은 부족한데 밀은 넘치다보니
그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시작됨
그래서 한창 혼분식 장려운동이 벌어질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수시로 국수 등을 드심
그러다보니 국민들도 자연스레
밀가루 관련 음식등을 먹기 시작하는데
박정희 대통령은 농촌 출신이기도 하시고
농촌문제나 정책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셔서
수시로 농촌현장을 찾곤 하셨는데
그때 새참으로 김치말이, 비빔국수 등을 즐겨드셨다함
그리고 시간절약과 혼분식 촉진을 위해서라도
새참으로 국수류를 먹을 것으로 적극 권장하심
그 결과 김치말이 국수와 고추장 비빔 국수등이 유행함
특히 새마을 운동때 절정에 달했다고 알려짐
그래서 학자들에 따르면 이때부터
농촌여성들의 편의성이 크게 증대됐다고 평가함
왜냐면 예전엔 농사일도 하면서
밥짓고 반찬하고 바빴는데
걍 국수만 삶아서 비벼서 내주면 되니까
(당시 정부도 이걸 의도해서 장려한거고)
뭐 농촌만 그러겠음? 도시도 그렇지 ㅋㅋ
걍 국수나 라면, 수제비만 해주면 되니까
그 결과 한국전 이후 1950년부터 본격화된
한국인의 밀가루 소비는 1960~70년대 폭발해
오늘까지 이르고 있는거임
5.16 에 가담하고 오랫동안
5.16 관련재단에 후원했던
한국 요구르트 윤덕병 회장
암튼 이러한 흐름을 주시하던 인물이 있었음
바로 한국 야쿠르트 창업주 윤덕병 회장임
1927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윤덕병 회장은 육군중령출신으로
한국전 참전은 물론이고
과거 5.16 에도 적극 가담해 참여했었고
혁명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 의장의 경호실장을 맡아 보좌했으며
1962년 청와대 경호실차장을 거쳐
중령으로 예편한 뒤 한전이사
공화당 충남4지구위원장 등을 역임한 인물임
그래서 전통적 우파층에선 높은 평가를 받지만
좌파들은 대대적인 불매운동을 전개하곤함
특히 윤덕병 회장은 5.16 에 참여한
인물들 중 한명이기 때문에
5.16 을 기리는 재단법인 5·16민족상에
1998년부터 2012년까지 17차례에 걸쳐
총 7억6500만원을 기부하게되는데
이는 전체 재단 기부액 3분의 1에 해당함
* 한국 야쿠르트 탄생
한국에 유산균 발효유를 본격 도입
1970년대 여성일자리 증대의 주역
윤덕병 회장은 정치에 손을 떼면서
본격적으로 기업활동에 매진하게 되는데
당시 한국 축산업 진흥등에 관심이 컸다고함
그래서 사촌형이자 건국대 축산연구소장
윤쾌병 회장과 함께 새로운 사업구상에 몰두하다
생각한게 바로 유산균 발효유 야쿠르트였다고함
그도 그런것이 윤쾌병 교수는 과거 일본 유학시절
농수의학을 전공한 소문난 일본통이였다고함
야쿠르트를 개발한 일본야쿠르트 중앙연구소장이자
회장이었던 시로타 미노루 박사와 친분이 두터웠다고함
그렇게 일본 야쿠르트를 설득해 합작을 결정하고
1970년 9월 한국야쿠르트를 설립함
야쿠르트 개발자 시로타 미노루 박사는
당시 한국에서도 알려진 인물이였는데
사실상 이때부터 한국에서도 유산균이
몸에 좋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다고함
사실 야쿠르트 도입초반엔 우여곡절이 많았다함
세균을 사먹냐고 정서적 거부감이 상당했다고..
하지만 서구문화의 영향을 받은 부유층들부터 시작
중산층들부터 서서히 퍼지기 시작해
종국엔 서민층들에게도 파고들기 시작함
야쿠르트 판매가 시작한 첫해
하루 판매량은 2만579병에 불과했으나
1975년 36만병, 1980년에는 200만병을 기록하며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며 대중화되기 시작해
1994년엔 하루 판매량만 740만병에 달했다고함
아마 94년 대폭염의 영향도 있을거라 판단됨
그리고 1971년 일명 야쿠르트 아줌마란
판매원 제도를 도입하게되는데
다들 잘 알다시피 야쿠르트 아줌마들은
판촉과 배달활동을 전담하는 집단으로
후에 야쿠르트 보급에 큰 기여를 한 걸로 평가됨
야쿠르트 판매의 90%가 방문판매니까 ㅇㅇ
그리고 도입당시 정부에서도 대환영했는데
그도 그런것이 당시 경력단절 기혼여성들이나
이혼녀들, 남편잃은 미망인들이 딱히 할 직업이 없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고함
그럴때 그런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직업이였으니까
기업입장에선 동네 골목구석구석 판매망 깔고
국가나 사회입장에선 일자리 생기고 윈윈이지
비만인과 흡연인을 극혐하고
강하게 배척했던 윤덕병 회장
아마 요즘같았으면 말이 많았겠지만
윤덕병 회장의 경우 창업정신이
건강사회 건설이라 할 정도로
건강관리를 강조한걸로 알려져있는데
본인뿐만 아니라 직원들에게도 엄청나게 강조함
아무리 엘리트고 능력있어도 비만한 직원들을 보면
나태한 사회악같은 존재라며 공개적으로 질타했고
그 바람에 윤덕병 회장이 떴다하면
비만인 직원들은 숨기 바빴다고함
그리고 흡연자들에게도 강하게 나갔는데
지나가는 직원들의 손 냄새를 맡아보며
흡연자인지 비흡연자인지를 검사할 정도였다고함
그래서 흡연자면 영혼까지 탈탈 털렸다고함
하지만 80대 이르러선 많이 풀어졌다고함
아무래도 연배도 있으시고 직원들이 손주뻘이니
많이 풀어졌을거란게 대체적인 평가임
반면 비흡연자이거나 몸매가 좋은
건강한 체형의 직원들은 상당히 각광받아
다소 스펙이나 능력이 모자라도
ㅆㅅㅌㅊ 출세가도를 달렸다고함
그리고 수시로 전 직원 대상으로
비만탈출 금연 프로젝트를 실시해
강제적으로 제재도 가해보고
인센티브도 주고 당근과 채찍을 병행했다함
물론 이건 윤덕병 회장이 계실 때 이야기고
지금은 뭐 돌아가셨으니 어떨지는 모르겠음
혹시 한국 야쿠르트 다니는 사람있으면 피드백 좀 ㅇㅇ
뭐 이에 대한 가치판단은 각자 알아서 하시길
워낙 민감한 문제라 나는 노코멘트함
1983년 9월 팔도라면 출시
본격적인 라면 사업 진출
위에서 윤덕병 회장이 한국인의 밀가루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걸 눈여겨본다고 했지?
윤덕병 회장은 향후 라면을 밥보다 더 많이 먹을거라 예측,
1982년 일본 라면 수프 전문 제조업체인
이찌방 식품과 기술 도입 계약을 맺고
이듬해인 1983년 이천 공장을 준공하고
그 해 9월 팔도라면을 출시함
팔도라면 3종(쇠고기·크로렐라·참깨) 을 출시했는데
팔도라면 참깨는 국내 최초로 액상스프를 도입한 제품임
이는 다음해 도입하는 팔도 비빔면에 영향을 끼침
당시 굳건한 양강구도의 라면시장
이런 틈새를 노린 팔도
하지만 1980년대 초중반까지
한국 라면시장은 농심 VS 삼양 양강구도였음
그러다보니 후발주자인 팔도입장에선
기존 라면만 가지고는 도저히 뚫을 수없는 상황이었음
이미 대중들은 농심 VS 삼양 맛에 길들여져있으니까
그러다보니 팔도는 끊임없이 틈새를 노림
그래서 남들이 아무도 시도안하는 라면시장을 개척함
대표적인 사례가 클로렐라 라면 출시인데
이미 80년대부터 건강을 중시하는
부유층이나 고소득층을 겨냥해 클로렐라로 만든
라면을 출시해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침
하지만 초록색 면발에 대한 거부감도 강했다고함
그리고 오늘 주인공인 비빔면이나
후에 대한민국을 뒤흔든 꼬꼬면 열풍도
끊임없이 틈새를 노리는 팔도의 전략으로 인한거임
1984년 팔도 비빔면 런칭
한국 비빔면 시장의 시작
그렇게 1984년 팔도가 회심의 카드를 던짐
바로 비빔국수를 인스턴트 라면화한 팔도 비빔면
당시 인기 개그맨이자 팔도 전속모델이였던
개그맨 심형래 (+최양락) 아재를 내세워
대대적인 마케팅에 돌입하는데
초반엔 우여곡절이 상당했다고 알려짐
다들 잘 알겠지만 팔도 비빔면은
먼저 끓이고나서 차갑게 찬물로 세척한 다음
액상스프를 넣고 이렇게 비벼서 먹는건데
당시 사람들은 걍 일반라면 끓여먹듯 한거임
그러다보니 맛이 존나 없고 불만이 대단했다고함
중독성 쩌는
ㅆㅅㅌㅊ 광고카피에
야쿠르트 아줌마들을 동원한
초반 영업전략
그래서 당시 TV나 신문광고에 대대적으로
비벼먹으라는 내용을 어필하는데
이때 등장한 전설의 광고카피
왼손으로 비비고~ 오른손으로 비비고~가 등장함
이게 중독성있게 먹혀들면서
비빔면은 서서히 대중들 속에 자리잡게됨
그리고 팔도 비빔면 보급의 1등 공신이
바로 야쿠르트 아줌마들이였다고함
위에서 말했지만 야쿠르트 아줌마는
동네 골목 구석구석 깔려져있는
한국 야쿠르트의 영업망역할을 해냄
이 아줌마들이 요쿠르트 팔면서
비빔면 영업사원 역할도 맡았는데
이 아줌마들이 집중공략한 곳이
바로 동네 아줌마들이 즐겨찾는 미용실 이었음
동네 미용실의 위력
다들 잘 알겠지만 동네 골목 미용실은
동네 아줌마들의 사랑방같은 공간임
일단 여기서 동네 소문도 다 퍼지는거고
뭐 좋은 브랜드나 제품이 있다면
여기서 다 유행하는 그런 역할을 하는거임
오프라인 맘카페같은 곳이라고 보면 됨
사실 지금도 동네 5060대 아줌마들에겐
중요한 정보공유와 교류의 장소이기도함
그래서 동네에 거주하는 10~30대들은
가장 기피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알려짐
여기 잘못가서 엄마친구인 동네아줌마들한테 걸리거나
자칫 이상한 소문같은거나면 골치아프거든
아무튼 저러다보니 보험설계사
의료기나 건강식품 판매업자들이
핵심적으로 노리는 곳도 바로 동네 미용실임
그리고 정치판 관련 현업 종사하는
사람들은 잘 아시겠지만
미용실(+복덕방) 같은 경우
한국 우파의 중요한 핵심 동네 인프라임
왜냐면 동네 미용실 역할이 저렇다보니
과거 민정당 시절부터 동네 미용실 아줌마들을
대거 당원으로 끌어들여 영업(?)을 시킴
그래서 지금 통합당같은 경우도 당원 상당수가
5060 자영업자 그 중에서 미용실 원장들 상당수임
사실 이 문제때문에 통합당이 자영업자 눈치를 보는거임
동네 복덕방이랑 미용실 여기가 핵심 인프라중 하나거든
원래는 약국도 그랬는데 민주당쪽에서
김대중 정부때 의약분업때부터 의사들은 조지고
약사들은 우쭈쭈해주는 모드로 가면서
분위기가 상당히 달라졌단 평가임
그래서 이번 21대 총선때 민주당에서
무려 3명이나 약사출신들 지역구 공천줘서 당선시킴
이때 동네 약사들이 커다란 역할을 해내는데
민주당 후보를 지원하는 입소문내고 장난아니였다함
(통합당도 약사들 눈치보느라 비례대표 1명있음)
아무튼 우파에선 동네 미용실이 강함
그래서 대한미용사회같은데선
선거때마다 통합당 당원 가입 대대적으로 하면서
활발하게 입소문이나 지지활동을 하는데
문제는 이게 5060 여성들에게만 한정적이고
동네 미용실이 점점 사라진다는 점이 약점임
이야기가 잠깐 샜는데 아무튼 야쿠르트 아줌마 + 동네미용실 공략은
1980~90년대 ㅆㅅㅌㅊ로 먹히는 전략이였음
야쿠르트 아줌마들이 미용실 원장들에게
공짜로 비빔면 등을 제공하면서 입소문을 내고
이를 먹어본 동네 아줌마들이 존나 맛있다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밥하기 귀찮을 때)
가족들한테 해주면서 점차 확산되기 시작함
2020년 7월 기준
누적판매량 15억 봉지
그 결과 1984년 출시 첫해
880만 봉지를 팔았던 비빔면은
불과 7년 뒤인 1991년 (누적) 5000만 봉지
3년 뒤인 1994년 (누적) 1억 봉지 돌파에 이름
팔도 비빔면 런칭성공에 대한
당시 팔도 (한국 야쿠르트) 반응.gif
이렇듯 팔도 비빔면이 빵 터지고
한국 비빔면 시장이 본격적으로 그 막을 여는데
이때부터 일명 비빔면 전쟁이 발발함
그리고 팔도 비빔면의 성공으로 인해
팔도가 라면사업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단 평가임
비빔라면이란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으니까
박 터지는 비빔면 전쟁
그럼에도 36년째
왕좌를 지키는 팔도 비빔면
1991년 업계2위 삼양의 반격
그런 팔도 비빔면의 성공에 빡친 기업이
바로 당시 라면 양강인 삼양이였음
뭐 농심이야 이미 기존 라면부터
짜장라면까지 선점한 상태였으니
굳이 비빔면 시장에 도전할 생각이 없었지만
삼양은 그게 아니였음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농심에 뒤지고
1989년 우지파동으로 점유율이 추락해
기존 후발주자들에게 밀린 삼양은 어떻게든
반등의 계기가 필요했고
그러다보니 1991년 열무 비빔면을 출시하고
공격적으로 비빔면 시장 진출을 선언하게됨
농심은 어차피 잡기 힘들거같고 이참에
치고 올라오는 후발주자들도 견제할 겸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비빔면 시장을 겨냥한거임
1등만 기억하는 세상
삼양의 콩라인 이미지만 강화
내가 늘 정보글에서 강조하고
이 글을 읽는 다수의 사람들도 너무나도 잘아는 사실이지만
어떤 일이든 이슈와 시장선점은 중요함
먼저 치고 들어가 먹는 놈이 임자임
후발주자가 따라잡으면 뭐 괜찮은데
안그럼 걍 2인자, 2등 이미지만 굳어지는건데
삼양이 그 대표적인 사례였음
농심이 짜파게티 성공하니까 짜짜로니로
팔도가 비빔면 성공시키니 열무 비빔면으로
이런식으로 누가 먼저 치고들어가면
그걸 따라가기 바쁘니 밀릴 수밖에 없지
물론 열무 비빔면도 그렇고 짜짜로니도
즐겨먹는 고객들도 많고 일정한 성과도 있고
아직까지 살아남은 브랜드긴한데
기존 팔도 비빔면이나 짜파게티엔
철저하게 밀렸다는게 뼈아픈 대목임
2016년 프리미엄 비빔면
갓비빔을 출시한 삼양
뒤에 가서 다룰 브랜드들이지만
사실 그후 삼양은 팔도 비빔면은 물론이고
뒤에 나올 농심, 오뚜기한테도 밀림
그러다 2016년 프리미엄 비빔면을 선보임
출시 당시 가격은 1500원대로
일반 비빔면보다 2~3배나 비싼 걸로 알려져있는데
이 역시 팔도 비빔면을 이기지못했고
후에 나올 경쟁 비빔면들에도 밀리는 결과를 가져옴
1992년 농심의 참전
농심 아줌마 강부자를 내세워
대대적인 마케팅
1984년 팔도 비빔면, 1991년 삼양 열무비빔면에 이어
라면시장 패권을 잡고있던 농심도
1992년 전격적으로 비빔면 전쟁에 참전을 선언함
그때 선보인 라면이 쑥 & 도토리 라면임
당시 농심의 간판모델인 배우 강부자 선생을 내세워
대대적으로 TV와 신문광고를 진행하고
전국 각지에서 무료시식회까지 열고 공세를 펼침
하지만 팔도 비빔면의 아성을 깨기엔 역부족이였고
강부자 선생이 광고한 농심제품중 유일하게
큰 성공을 거두지못했다는게 대체적인 평가임
하지만 40대이상 세대들중엔 이 비빔면을 그리워하며
맛있다고 회고하는 이들도 적지않다고함
OO 비빔면 출시
이후 농심이 출시한게 바로 OO 비빔면인데
97비빔면을 필두로 99비빔면까지 나오게됨
이 조차도 팔도 비빔면의 아성을 이기진 못함
하지만 농심 비빔면을 선호하고
비빔면은 농심만 사먹는다는 이들이 적지않았다 알려짐
2005년 야심작 찰비빔면 출시
그러다 2005년 농심은 수년간 개발끝에
야심작 찰비빔면을 대중앞에 선보임
매콤달콤한 비빔장에 레몬농축액을 더한
찰비빔면은 기존 비빔면들에 비해
매콤함으로 유명한데 사실상 이때부터
비빔면들간 매운맛 전쟁이 벌어지게됨
서로 누가 더 맵게 하느냐 경쟁이 붙는건데
그러다보니 매운걸 잘 못먹는 사람들은
비빔면 소비를 가급적 자제하는 현상이 벌어짐
그리고 찰비빔면의 핵심타깃은 당시 2030세대였음
원래 기존 비빔면의 핵심 타깃은 가족단위였으나
찰비빔면은 2030세대 특히 여성들을 겨냥하는데
당시 어머나 열풍으로 트롯의 부활을 알렸다는
가수 장윤정을 모델로 기용해 대대적으로 마케팅해서
2030세대 특히 여성도 잡고 가면서 동시에
중장년까지 아우르는 전략으로 성공한 전략으로 평가됨
그러다보니 현재까지도 비빔면 시장에서
농심의 주력카드는 바로 찰비빔면으로
지금은 오뚜기등에 다소 밀렸지만
한때 팔도 비빔면과 나름 경쟁구도를 형성함
물론 점유율은 팔도 비빔면이 압도했지만 ...
2020년 3월 칼빔면이란
야심찬 승부수를 던짐
하지만 찰비빔면 또한 팔도 비빔면의 아성을 넘지못했고
농심은 그후 어떻게든 비빔면 시장도 장악해보고자
절치부심하며 신제품 개발에 열을 올리게되고
2020년 3월 칼국수면과 김치비빔장의 콜라보를 내세운
비빔칼국수를 인스턴트 라면화한 칼빔면을 출시함
특히나 유튜브등 뉴미디어나 인스타등 SNS를 활용해
2049세대를 공략하고자 노력중임
아직 먹어보진 못했는데 먹어본 사람들 피드백 좀 부탁드림
2010년대이후
오뚜기의 대반격
사실 오뚜기도 이미 과거 비빔면 시장에 진출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며 공략하고자 노력함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도는 물론이고
농심에게도 항상 밀리는 처지였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밀 비빔면은
나름 안정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면서
2위인 농심을 위협할 정도로 급성장하는데
2013년 비빔면 시장 점유율
10% 돌파한 오뚜기
2013년 점유율 10%를 기록하며
2위인 농심을 바짝 추격하게됨
물론 풀무원이나 삼양과 격차도 크게 벌어졌고
그 와중에 삼양 열무비빔면은
3.7%에 불과한 점유율로 꼴찌를 차지함
한때 라면 종가였던 삼양의 몰락이라고 화제가 됨
참고로 비빔면 단일품목으론
이 무렵 오뚜기 메밀비빔면이
팔도 비빔면에 이어 2위로 치고 올라감
다만 농심이 둥지냉면을 존나 팔아먹어서
합산 점유율에선 2위를 간신히 지킨거지
오뚜기 비빔면의 특징은
바로 참깨고명스프임
다른 비빔명과 달리 고소한 맛을 더한다고
이 무렵 참깨고명스프를 넣게되는데
이는 훗날 런칭한 진비빔면까지도 이어짐
2017년 프리미엄 비빔면 시장 진출
이어 2017년 여름 오뚜기는
비빔면 시장 2위를 굳히면서
프리미엄 비빔면 시장도 진출하고
동시에 농심 둥지냉면을 견제하고자
함흥비빔냉면을 인스턴트 라면화한 함흥비빔면
그리고 콩국수를 라면화한 콩국수 라면을 출시함
2020년 백종원을 앞세운 진비빔면
업계 2위자리를 굳히면서
1강 (팔도) 1중 (오뚜기) 구도로 재편
이어 오뚜기는 2020년 야심박 진비빔면을 출시함
대중들에게 이미지 좋은 더본코리아 백종원 대표를
전면에 내세워 출시하는데 출시 3주만에 500만개
출시 2달만에 2000만개를 돌파하는 기록을 세움
당시 팔도 등 경쟁사들은 ㅅㅂ 백종원 마케팅 장난 아니네
엄청나게 경악했다고 알려짐
비빔면 시장 2위
전체 라면 시장 2위를
석권한 오뚜기
다들 잘 알겠지만 한국 라면시장은
기존 2위였던 삼양이 무참히 추락하고
2013년부터 오뚜기가 치고 올라가기 시작해
현재 1강 (농심) 1중 (오뚜기) 2약 (삼양 & 팔도)임
팔도는 비록 전체 순위는 밀리지만
비빔면 시장 하나만큼은 꽉 잡고 있으니
그나마 경쟁력이 있는데 삼양은 ......................
아마 오뚜기의 2020년 점유율은 오를거란 전망임
진비빔면이 팔려도 너무 팔려버림
개인적으론 농심 1강 체제는 굳건할거라 생각함
다만 현재 오뚜기의 기세가 무섭긴함
그렇다면 과연 비빔면 시장을 장악한
팔도는 이러한 후발주자들의 공세에 대해
어떤 전략을 가지고 대응하고 있을까?
후발주자들의 공세에 대한
팔도 비빔면의 대응
하지만 팔도도 마냥 팔도 비빔면 가지고
버티기에 들어간 것만은 아님
기존 1위인 팔도 비빔면으로
오랫동안 그 맛에 길들여진
중장년, 노년층들을 겨냥하면서
매운맛에 열광하는 2049세대
특히 여성들을 겨냥해 매운맛이 한층 강화된
팔도 쫄비빔면을 출시하는데 라면 포장지를 보듯
존나 맵다고 알려지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함
하지만 팔도 브랜드만 보고 모르고 산
중장년, 노년층들, 남성들같은 경우엔
ㅅㅂ 존나 맵다고 불만이 대단했다고함
급성장하는 프리미엄 비빔면 시장에
공격적으로 대응한 팔도
이어 2017년 점점 성장중인
프리미엄 비빔면 시장에도 사업을 확장하는데
그래서 출시한게 바로 초계 비빔면임
당시 가격은 1500원으로 알려져있는데
스페셜 시즌 한정판으로 출시됐다고 알려짐
편의점 판매에 힘을 주면서 2049 세대를 겨냥해
공격적인 판매전략을 구사하는데
의외로 팔도 비빔면만큼 잘 팔리진않았다고함
출시 2달만에 1000만개를 판매한
팔도 35주년 한정판 괄도 네넴띤
사실 팔도에겐 오랜 고민이 하나 있었음
그건 바로 중장년, 노년층에게 다소 치우쳐
올드한 브랜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인데
특히나 2013년 전후해 좌파들이
조직적으로 선동한 불매운동 여파때문에
팔도 = 올드함 이런 공식이 다소 강해짐
그러다보니 팔도는 어떻게든 2049세대를 겨냥해
그들 맘을 잡고자 노력하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35주년 기념
한정판으로 출시된 괄도 네넴띤임
당시 글자를 비슷해 보이는 다른 글자로
바꿔 부르는 이른바 야민정음에서 착안된 제품으로
출시 한달만에 500만, 2달만에 1000만개를 판매함
젊은층과 소통을 고려하면서 동시에
치고 올라오는 경쟁자들을 견제하기위한 카드였음
1초당 5개씩 팔리는 팔도 비빔면
비빔면 시장의 절대강자
이렇듯 팔도 비빔면은 아직도 막강함
경쟁자들이 치고 올라오니 뭐니 말 많지만
시장점유율은 60%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고
특히 올해 들어 창사이래 최초로
2020년 올해 누적판매량만 1억개에 달함
즉 계산해보면 1초당 5개씩 불티나게 팔렸단 소리
아직도 비빔면 = 팔도 비빔면임
뭐 하지만 이러한 판매량과 매출 상관없이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각자 선호하는 비빔면이 있을테니
각자 알아서 판단내리길 바람
이렇듯 오늘은 1984년 출시된
팔도 비빔면의 탄생과 그로 인해 시작된
한국 비빔면 시장의 역사와 경쟁에 대해
종합적으로 알아보는 시간을 가짐
언제나 정보를 제공할 뿐 판단은 각자 알아서하고
오늘도 역시나 긴글 읽어줘서 고맙다
다음엔 새로운 정보로 찾아옴
5줄 요약
1 1984년 팔도 비빔면 출시 이후
2 그후 한국 비빔면 시장의 역사가 시작됨
3 후발주자들이 아무리 치고올라와도
4 아직까진 팔도 비빔면이 압도적인 1위
5 팔도 비빔면 1강체제는 계속 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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